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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 어떤 (불)투명한 움직임의

 

1.

‘청록(靑綠)’을 뜻하는 ‘teal’은 색이기 전에 새 이름이었다. 겨울 철새 중 하나인 쇠오리의 눈가에는 붓으로 부드럽게 그려 내린 듯한 청록색 무늬가 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와 퍽 잘 어울리는 갈색 깃털들 사이로 드러난 이 오묘한 색은 새의 명칭을 따라 20세기 초부터 ‘teal’로 불리기 시작했다. 박석민의 전시 제목 ‘Teal Greenhouse’에는 또 다른 색상이 등장한다. 바로 청록과 같은 계열인 초록이다. ‘온실’을 뜻하는 ‘greenhouse’는 광선, 온도, 습도 등을 인공적으로 조절하고 환경을 통제해 식물(green)을 재배하는 건축물이다. 변화하는 계절과 무관하게 푸르름이 유지되어 외부와 시·공간적으로 분리된 곳이다. 작가는 이러한 온실의 구조와 개념이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다양한 군의 SF소설에 등장하는 소행성, 돔, 아파트, 섬 등’의 모티브가 되어 ‘폐순환 생태계’로 정의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후의 터전이자 새로운 미래를 재건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라는 양가적 상징성을 띠며 미래의 기술을 배경으로 ‘원초적인 모순성’을 드러내는 구획된 장소로 시공간에 관한 보다 복합적인 논의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사변적 서사 속 폐순환 생태계를 모티브로 삼은 이번 전시에서 WWNN은 전시장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가상 온실로 작동하며, 이곳에 이식된 회화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한다. 이때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시각적으로 연결하며 동시에 공간적으로 구분 짓는 투명한 유리창은 안과 밖, 이곳과 저곳, 현재와 미래의 접점을 다루는 일련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밑면이 잘린 원형부터 타원, 직사각, 그리고 비정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패널 위에 작가가 구현한 이미지는 온실의 투명한 보호막 밖으로 무한하게 펼쳐진 우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한편, 막 내부에서 통제되고 있는 인공적 생태계를 떠올리게 한다. 즉 패널의 화면 또한 외부와 내부 세계가 맞닿아 있는 임시 경계인 셈이다.

 

긴장감이 고조된 그 경계에서 부분적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장면들은 찰나의 순간이자 먼지구름과 산란하는 빛, 그리고 운무가 만들어낸 일시적 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록색의 변주로 구현된 푸르스름한 새벽녘과 황혼의 어스름한 시간대의 장면들은 방금 생성되었지만, 곧장 소멸할 장면들이기에 극적이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작가는 굳이 인류의 멸망을 애도하거나 종말 이후의 생존을 낭만적으로 꿈꾸지도 않는다. 오히려 모호함을 견지한 채, 경계와 맞닿아 있는 외부 세계와 미래가 지닌 불확실성에 집중한다.

예컨대 1층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의 경우 화면 중앙에 자리 잡은 세 개의 물체는 거대한 동물의 이빨처럼 보이기도 하고, 위태롭게 서로를 지지하는 비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미지에 포착된 대상의 불명확성은 발화하는 씨앗인지 광물로 이루어진 운석인지 알 수 없는 , 얼핏 비둘기의 형상이나 나비 떼의 날갯짓을 닮아있는 과 의 구름에서도 재차 강조된다. 그들은 폐허의 흔적일까? 아니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단서일까?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적일까? 아니면 연대하기 위해 나타난 동료일까? 혹시 구원자일 수도 있을까?

의도와 의미,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대상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온실이라는 보호막 아래 몸을 숨기고 은둔해야 할까? 전시라는 사건을 통해 회화의 (불)가능성을 다각도에서 탐색해 온 박석민은 끊임없이 증식하는 이러한 질문을 비단 관객에게만 던지지 않는다. 그는 역으로 작품에도 물음표를 붙이며 회화 매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지된 허구의 이미지는 시공간성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 묻는다. 구체적인 하나의 방법으로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해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비물질적 이미지 생산 방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한편, 이를 물성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전 작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재료를 도입했다. 매끈한 캔버스 표면 위에 도포한 젤이나 시멘트, 광물, 진흙을 짓이겨 바르고 그 위에 물감을 분사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그림의 ‘내부로부터 쌓아 올린 텍스처’를 회화적 ‘제스처로 교란’하며 시간성이 결여된 평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간이 축적된 어떤 것으로 매체의 개념을 재정의해 본 것이다.

 

2. 

한 지면에 상이한 관점과 흐름의 글이 존재한다. 이는 경계가 포용하는 안과 밖, 통제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박석민의 방법론과 닮아있다. 지금부터는 작품을 응시하는 시선을 거두고 상상을 통해 전시를 바라보자. 위성지도 위에서 갤러리 건물을 조감한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점차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며 줌아웃(zoom-out)하듯 간격을 넓혀보자. 

 

앞서 얘기한 것처럼 ≪Teal Greenhouse≫가 전시이자 동시에 가상 온실이라면, 우리는 ‘지도 보기’를 통해 이 공간에서 통제하고 배양하고 있는 생태계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온실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회화다. 실제로 박석민은 점차 작품이 자신만의 생명력을 갖고 증식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작가라는 주체로 그림이라는 대상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그는 생존하기 위해 변이와 증식을 반복하는 회화라는 생물을 관찰, 관리, 보호, 실험하고 그 활동에 반응 및 대응하는 것이다. ‘지도 보기’를 통해 우리는 회화를 배양하고 있는 전시 또한 도시, 국가, 지역, 행성(그리고 결국 언젠가 이 모든 경계를 소멸의 상태로 몰아넣을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증폭되는 온실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박석민의 작업은 일관성을 추구하거나 형식의 통일성, 그리고 발전 지향적인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회화가 변이하는 과정을 그때그때 관객과 공유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Teal Greenhouse≫에서 선보인 신작은 우주적 현상을 다루었던 ≪Vortex 8≫(2023)나 SF 소설을 모티브로 한 ≪라그랑주 포인트≫(2022), 또는 시공간성을 탐구한 ≪엔젤 테일≫(2022)을 부분적으로 참조하는 듯하지만, 앞선 전시의 연장선에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정형으로 나무 패널을 조형하거나 공간성을 중점으로 다룬 이번 작업은 그가 초기에 시도했던 시각적 실험 방식과 조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발터 벤야민의 성좌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과 함께 섬광처럼 드러나며 하나의 성좌를 이루듯이’ 예술작품은 불연속적인 관계를 통해 통합적으로 형상화된다고 언급한다. ≪Teal Greenhouse≫는 박석민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 지나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작업, 그 크고 작은 섬광들이 이루는 성좌의 형상을 관객들이 상상해 보기를 제안한다. 

[1] 박석민, 「미출판 작가 노트」, 2024. 

[2] 보리스 그로이스는 전시는 대상이 아니라 사건이라 주장한다. 보리스 그로이스, 「포스트 인터넷 시대 미술관의 큐레이팅과 수집」, 『미지의 전망들: 동시대 미술과 제도』(국립현대미술관, 2023), p. 23 

[3] 박석민, 「미출판 작가 노트」, 2024. 

[4] 박석민, 필자와 인터뷰, 2024. 5. 12.

[5]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최성만, 김유동 번역(한길, 2009).

A clue, for a (un)transparent border 

 

1.    

Before "teal" meant a color, it was a name, reminiscent of the soft teal markings around the eyes of a duck, the teal. These subtle hues, nestled amid dreary winter branches and blending seamlessly with earthy brown feathers, have lent the bird its name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In Park Seokmin's exhibition titled "Teal Greenhouse," another shade emerges alongside teal – green, a color akin to teal. A "greenhouse" is a structure designed to artificially control light, temperature, humidity, and other environmental factors to cultivate plants, regardless of changing seasons, providing a space physically and temporally isolated from the outside world. The artist underscores the architectural and conceptual parallels between such greenhouses and motifs like asteroids, domes, apartments, and islands – common in science fiction novels dealing with post-apocalyptic scenarios from the 1970s onwards. These settings, deemed "closed-loop ecosystems," symbolize both humanity's potential last stand and an incubator for rebuilding a new future, serving as a locus for exploring complex discussions on space and time against the backdrop of advanced technologies. 

In this exhibition, inspired by dystopian narratives of closed-loop ecosystems, WWNN transforms the exhibition space into a virtual greenhouse, preserving and nurturing the vitality of the transplanted paintings. Transparent glass panels visually connect and spatially delineate the interior and exterior of the building, serving as crucial clues for understanding a series of works that explore the intersection between inside and outside, here and there, present and future. Rendered on panels of various shapes – from circular segments to ovals, rectangles, and irregular forms – the images created by the artist evoke both the boundless expanse of space beyond the greenhouse's transparent barrier and the controlled artificial ecosystems within. Thus, the panels' surfaces serve as temporary boundaries blurring the lines between external and internal worlds.

Amidst the tension at these boundaries, the scenes partially witnessed by the viewer share a commonality: they are fleeting moments – dust clouds, scattering light, and transient phenomena created by chance. Scenes depicting the verdant hues of dawn and dusky twilight, rendered in variations of teal, are both newly formed and imminently fleeting, lending them a dramatic and solemn quality. However, the artist neither mourns humanity's demise nor romantically dreams of survival post-apocalypse. Instead, he focuses on the uncertainty inherent in the boundaries and the future they represent, embracing ambiguity rather than offering definitive answers. For instance, in Teal Greenhouse (fossil) encountered at the entrance to the first floor, three objects centrally positioned in the image resemble either giant animal teeth or precarious pillars supporting one another. The ambiguity of the subjects captured in the images recurs in works like Terrarium 01, where it's unclear whether the depicted object is a sprouting seed or a meteorite composed of minerals, or in Terrarium 03 and Temple Dawn 02, where cloud formations vaguely resemble doves or the fluttering wings of a swarm of butterflies. Are they traces of ruin or harbingers of new life? Are they revealing themselves as adversaries poised to attack us, or comrades appearing to stand in solidarity? Could they even be saviors?

Faced with such ambiguity of intent and identity, how should we approach these enigmatic subjects? Should we attempt to communicate with them in any way possible, or should we retreat and hide beneath the protective shelter of the greenhouse? Park Seokmin, through his ongoing exploration of the (im)possibilities of painting within the context of exhibitions as events, doesn't merely pose these questions to the audience but also imbues his artworks with question marks, probing the limits of the medium and how it can articulate temporality with static, fictitious images. As one possible response to these questions, the artist incorporates recently developed non-material image production methods, such as generative AI, big data, and software, into his practice and materializes works with the application of elements foreign to his paintings, such as gel, cement, minerals, and mud. By layering these materials and disrupting the texture built up from within the painting, he disrupts the temporality inherent in flat, static images, redefining the medium as an accumulation of time.

 

2.    

Different perspectives and narrative flows coexist on a single page, resembling Park Seokmin's approach to the duality of boundaries that encompass both the controlled reality and uncertain future. Let's now withdraw our gaze from the artworks and instead envision the exhibition through imagination. Imagine viewing the gallery building from above, as if surveying it on a satellite map. Gradually scroll downwards, zooming out to widen the gap between perspectives.

As previously discussed, if Teal Greenhouse functions not only as an exhibition but also as a virtual greenhouse, then through the "cartographic gaze," we observe the ecosystem cultivated within this space from the observer's perspective. What sustains life within the greenhouse? None other than paintings. Park Seokmin has confessed that his artworks seem to develop a life of their own over time. Departing from the unilateral relationship of an artist conceptualizing and completing a painting, he observes, manages, protects, and experiments with the painting as a living organism, responding to and interacting with its activities. Through the "cartographic gaze," we also come to realize that just as paintings are cultivated within the exhibition space, the exhibition itself is growing within an infinite layer of greenhouses: from cities to nations, regions, planets, and ultimately, a black hole that will one day engulf all these boundaries.

As a result, Park Seokmin's work doesn't strive for consistency, formal uniformity, or a progressive structure. He simply shares the paintings' evolving process with the audience as it happens. Similarly, while the new works unveiled in Teal Greenhouse partially reference his previous exhibitions like Vortex 8 (2023), which dealt with cosmic phenomena, or Lagrange Point (2022), inspired by SF novels, or Angel Tail (2022), which explored spacetime, they don't fit neatly into a continuum with his previous exhibitions. Instead, the irregularly shaped wooden panels and the emphasis on spatiality in these new works resonate with the visual experimentation he initially attempted.

In this sense, this exhibition recalls Walter Benjamin's concept of the constellation. He suggests that artworks coalesce into a unified constellation through discontinuous relationships, where "what has been comes together in a flash with the now." Teal Greenhouse invites viewers to imagine the constellation of Park Seokmin’s art formed by the flashes of his past, present, and future practices. 

 

[1] Park Seokmin, “unpublished artist statement,” 2024. 

[2]Boris Groys claims that an exhibition is an event, see Boris Groys, "Curating and Collecting Art in the Museums of the Post-Internet Age", Potential From the Unknown: Contemporary Art and Institutions (Seoul: MMCA, 2023).   

[3] Park Seokmin, “Unpublished artist statement,” 2024. 

[4] Park Seokmin, Interview with the author, 2024. 5. 12. 

[5] Walter Benjamin, The Origin of German Tragic Drama (London: Verso,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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