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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포인트

Lagrangian Point

글_

박석민 Seok Min Park

지근욱 Keun Wook Ji

바라봄의 바깥을 상상하는 회화

Painting Imagining Beyond the Gaze

글_

박미란 Park Mi-ran

미술 이론, 학고재 기획실장

Art theory, Director at Hakgojae Gallery

아날로그 앰비언트 스프레이

Analogue Ambient Spray

글_

황윤중 Hwang Yoon-jung

자유기고가

Freelance Writer

멀어짐으로, 마침내 비근해지는

Finally Becoming Familiar by Growing Distant

글_

조현아 Hyunah Cho

미술비평, 월간미술 기자

Art critic, Monthly Art editor

확장된 장에서의 회화

Painting in an Expanded Domain

글_

장진택 Jintaeg Jang

큐레이터

Curator

플래시백: 무엇같이 보이지 않게 된 기억

Flashback: Memory That No Longer Looks Like Anything

글_

추성아 Sungah Serena Choo

독립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트리비아

TRIVIA

글_

임보람 Lim Bo Ram

독립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MIMESIS AP4 : MINGLE-혼재

MIMESIS AP4: MINGLE

글_

정희라 Jeong Hee Ra

독립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전능회화

An Omnipotent Art

글_

김정현 Kim Jeong Hyun

미술비평

Art critic

멋진 신세계 : 재현되지 않은 얼룩들

Great New World : Unreproven Stains

글_

추성아 Sungah Serena Choo

독립큐레이터

Independent Curator

작가노트 : 그레이스

Artist Statement: GRACE

글_

박석민 Park Seok Min

모든 것을 내놓는 공간

 

회화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영화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이미지가 압도한 시대에도 여전히 회화의 능력을 믿고 있는 소수자들의 연대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박석민의 회화를 생각하며, 작품의 이미지를 들여다보거나 감각적 분석을 하기에 앞서 회화의 생명력의 원천을 먼저 질문해보려고 한다. 올해 8월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화 자리에서 작가는 “작가의 작업을 생명이라 하고, 작업하는 행위를 살만한 행위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전제하며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머뭇거리면서도 견고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는 작업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세한 일상적 분투의 고백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부터 작업 초기까지 세속적 삶의 어려움은 작업 자체에 대한 혼란스런 감정을 낳았는데, 간간히 탐닉했던 과학 교양이 그로부터 벗어나는 데 의외의 단서가 되었다.

  박석민은 종종 과학적 개념에 영감을 받아 작업해왔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토크의 제목인 ‘테라포밍’(행성 개조), 2018년 개인전에 전시한 시리즈 작업의 제목인 ‘코스믹 스테이션’(스페이스 스테이션을 변형)과 또 다른 작품 제목인 ‘화이트홀’(블랙홀과 대비되는 과학적 개념), 2016년 개인전 제목인 ‘새로운 위성(New Satellite)-모형궤도’과 당시 전시작의 제목인 ‘이벤트 필드’(이벤트 호라이즌 개념을 참조해서 변형). 개념적 전용이 그에 대한 삽화적 드로잉을 뜻하진 않는다. 작가는 암중모색의 시기를 거친 이후 회화에 관해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한 공간 안에서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개인의 내면적 감정을 투사하는 고백의 장소,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이미지 저널리즘, 회화사적 맥락을 계승하며 이론적인 매체 실험을 하는 장소. 회화는 이 모든 것일 수 있지만 그 중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세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놓는 화이트홀로서 상상해본다면 어떤가. 회화는 지금 여기에 없거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든 것을 내놓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그림 안의 그림

 

작가에게 받은 포트폴리오 파일로 지난 작업을 주르륵 훑어보다 대부분의 작업에서 화면이 꽉 찬 인상을 받았다. 공사 중인 건물의 현관 앞에 연기와 만화적인 번쩍거림과 빛이 소란스럽게 피어나는 <The Side Entrance>(2014)는 천천히 들여다보면 건물에 충돌한 사물의 정체나 외벽에 기대놓은 문짝, 바닥에 누운 강아지, 출입 통제용 테이프 같은 게 하나씩 눈에 들어오지만, 무언가 가득한 느낌은 다양한 사물 탓이 아니라 화면을 전면화하는 티끌이나 긁힘 또는 물감이 튀긴 흔적에서 온다. 핀 조명이 켜진 것처럼 빛이 선명한 기둥의 형상을 이루며 공간에 연극적인 긴장감이 도사리고, 우주선이 건물에 부딪히거나 <The Return Visit>(2014)와 같이 인물이 폐쇄된 공간에 들어서며 먼지나 연기가 발생하여 생긴 순간의 다소 드라마틱한 장식적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층 건물이 빼곡한 도심에서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또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허공에서 한 인물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Event Field>(2016)의 구름 낀 하늘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감은 날씨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다른 그림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같은 표현은 날씨보다 물감 자체의 물성을 노출한다.

  건물이나 방 안처럼 막힌 공간을 자주 그리고, 좁은 공간을 전개도 형식으로 펼쳐 그린 다섯폭화 <Unfolding Site(주머니쥐가 학습한 스몰마켓 전개도)>(2016)와 같이 실제 공간을 회화 표면에 구조적으로 전면화하여 공간적으로 닫힌 느낌도 있다. 작가는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의식적으로 고수하며 주택가의 골목길처럼 생활 반경의 익숙한 풍경에서 작업의 소재를 발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정밀하게 기록적으로 묘사하거나 추상화하지 않는다. 올해 작업 중인 연작 그림에는 화면 가득 수조가 등장한다. 작가는 데미안 허스트가 상어를 가둘 때 사용했던 비트린(유리 진열장)을 언급했다. 그림 속에 진열장을 그리는 도상은 계몽의 시대 전후에 부유한 귀족과 상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y)’이 대표적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장식장의 문은 그 안에 놓인 사물의 진귀함을 지시하면서도 바깥에 선 관람자의 소유욕을 발동시킬 만큼 안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박석민의 수조는 욕심나는 사물을 채집하는 그물망인가? 캔버스는 이런저런 장식장을 얼마든지 가둘 수 있는 전능한 장식장인가? 수조 안의 세계는 개인의 특수한 수집 취향으로 그림 안에 불려 왔는가? 

  수조는 그것이 놓인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생태계를 구축하는 공간이다. 피에르 위그처럼 헬라 세포를 배양하지 않더라도(2017년 뮌스터 조각 페스티벌 전시작 <앞선 삶 그 이후에>의 일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혹은 그 덕분에 유유자적 살아있다. 이런 식의 낯선 틈입은 주변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일어난다. 박석민은 <Invitable Shapes>(2016)이나 <Back Room>(2016)에서 그림 안에 그라피티 그림을 그렸는데, 작가의 작업에서 그라피티는 길거리에서 수집한 풍경 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 듯하다. <Event Field>에서 느닷없이 도시에 낚싯대를 드리운 인물과 그가 발 딛고 있는 토대가 생략된 허공 위의 공간은 매우 허구적이지만 그림이기 때문에 일말의 실제성을 획득한다. 반쪽짜리 실제성 또는 실제 현실과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실제성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는 <The Side Entrance>에 대해 “만화적인 요소 위에 더 만화적인 걸 그리면 이전에 그린 게 실제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단지 회화적 톤과 만화적 톤이라는 이질적 표현 양식의 공존 정도가 아니라, 이질적인 실제성의 ‘얽힘’을 위한 게 아닐까. 박석민의 회화에서 표면의 불순함은 그라피티의 바탕인 콘크리트 벽면의 거친 질감보다, 그림 안팎의 세계가 서로를 허용하며 중첩되는 순간을 가능한 오래 붙잡아보려는 접속의 시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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